분산화로 건강한 네트워크 만들기
구성원이 주인인 플랫폼 서비스가 존재할 수 있을까? 플랫폼이 불건전해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운영 주체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플랫폼을 소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플랫폼을 소유하고 규칙을 독재하면 큰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카오T, 배달의 민족, 카카오 헤어샵 등은 민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해나갔다.
플랫폼 서비스는 편리함을 미끼로 시장을 지배하고, 독점 위치에서 이용료와 광고 정책을 결정해왔다. 플랫폼은 단순히 서비스를 중개할 뿐인데, 거래대금의 10% 이상을 수수료로 떼어간다. 게다가 플랫폼 내 광고 상품은 가맹주들 사이에서 마이너스섬 경쟁만을 만든다. 광고 아이템을 구매한 가맹주는 광고비에 허덕이고, 광고를 내지 않은 사람은 매출을 내지 못해 말라죽는다. 그 사이에서 배가 부른건 역시 플랫폼이다.
그렇기에 거래 당사자가 주인인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분산화를 제안한다. 블록체인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연합 프로토콜, P2P와 같이 분산화 서비스를 만들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방법과 관계 없이, 플랫폼을 소유하여 시장 지배적 권력을 가지는 가능성을 최소화 하는 것이 골자이다. 시장의 주인이 단일 주체가 되어서는 안되며, 주인이 있더라도 일방적인 영리 목적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연합 프로토콜 아키텍쳐
사례: 이메일(지메일, 네이버), ActivityPub(mas.to, misskey.io), 블루스카이
공통의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여러 서비스가 연합해 하나의 플랫폼처럼 동작하고, 누구나 새 서비스를 시작해 연합 플랫폼에 합류할 수 있는 아키텍쳐이다. 대표 성공 사례로 이메일이 있다. 지메일과 네이버 메일은 서로 다른 서비스이지만, 이메일이라는 공통의 프로토콜을 사용하며 플랫폼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지메일 사용자와 네이버메일 사용자 사이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연합 프로토콜은 “신규 플레이어의 시장 진입 용이성"으로 네트워크의 건전함을 유지한다. 기존에 연합 네트워크에서 활동중이던 유저를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연합 “택시 호출" 네트워크에 새 택시 호출 어플리케이션이 합류했을 때, 새 앱은 밑바닥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다. 유저를 기존 연합 네트워크에서 활동중이던 기사님과 즉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플랫폼의 Cold start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으며, 서비스간의 경쟁을 유도해 건전함을 꾀한다.
연합 네트워크의 대표 성공사례인 이메일을 살펴보자. 이메일(SMTP)은 메시지 전달 방식을 단일화하여 사용자간 통신 규약의 세계 표준이 되었다. 이메일은 사용자 정보(메일 주소)를 유지한 채 다른 서비스로 이주할 수 없었기에, 기업이 사용자를 lock-in 하기 좋은 수단이였다. 이는 많은 기업들이 메일 서버를 운영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다. 특히 이메일이 인터넷의 신원 인증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락인 효과는 더욱 커졌다. 그렇게 전 세계 기업들의 서버로 사용자가 분산될 수 있었다.
이메일이 성공한 이유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 운영의 이점
- 기업 입장에서는 메일서버를 운영하는게 도움이 된다
- 충분한 분산
-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서비스들
- 대형 메일 서버들이 서로를 견제할만한 규모에 있다
이는 반대로 위와 같은 이점을 갖지 못한다면 연합 프로토콜 네트워크는 실패하기 쉽다는 의미이다. 수많은 기업 독점 플랫폼들이 즐비한 요즘 시장에서 위와 같은 이점을 갖기는 어렵다. 새로 등장하는 연합 네트워크가 성공하려면, 독점 플랫폼을 견제할 수 있을 정도의 동력과 자본, 그리고 여러 성공요건을 달성할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한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연합 프로토콜인 AT Protocol(서비스 이름은 블루스카이)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블루스카이는 트위터의 대체제로 등장했으며, 비영리단체에서 개발하는 오픈소스이면서도, 충분히 많은 투자를 받아 활발하게 개발중이다. 특정 인물에 의해 개악되고 있는 트위터에 지친 사람들이 AT Protocol 서비스로 이주하고 있다.
연합 네트워크 내에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점은 사용자 경험에서는 약점이 된다. 트위터라는 네트워크 내에 트위터라는 단일한 앱만이 존재하는 기업 플랫폼의 사례와는 달리, ActivityPub 네트워크의 경우엔 mas.to, misskey.io, twt.rs, mastodon.social 등 수많은 서비스가 있지만, 사용자들은 각 서비스들의 관계와 특성을 알기 어렵다. 불확실함 속에서 선택의 필요성은 사용자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는데, AT Protocol은 이 문제를 메인 서버를 둠으로써 해결했다. AT Procotol의 개발주체는 bsky.social이라는 서버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AT Protocol의 약점이기도 하다. 필연적으로 사용자들은 bsky.social라는 한 서비스에 몰리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연합 네트워크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 소수의 서버에 사용자가 집중됨이 극단화되면, 안 좋은 경우에는 인기 서버가 연합 네트워크에서 독립하여 독자 플랫폼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를 defederation이라고 부른다. 연합 네트워크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다면 연합으로 얻는 이점보다 독립 후 플랫폼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이점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합 네트워크의 참가자는 한 서비스에 트래픽이 몰리는 상황을 경계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규칙을 만든다. 정확히는 한 개인의 권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규칙을 구현할 수 있다. 그렇기에 블록체인 위에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사업의 소유자나 개발자의 지시만으로는 플랫폼의 규칙을 바꿀 수 없도록, 거래 당사자의 동의 하에만 규칙 개정이 진행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설계는 플랫폼의 주권을 참여자에게 배분하여 민주주의식 운영이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이더리움의 “트레저리"와 같은 토큰 풀 관리 시스템은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는 가치 전송(플랫폼 내에서 돈과 객체의 이동)에서 특히 강점을 보인다. 트레저리와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한다면, 사용자에게 이용료를 받고 광고주에게 광고대금을 받고, 이를 다시 컨텐츠 생산자에게 재분배하는 모든 과정을 규칙에 근거하여 처리할 수 있다. 기업 네트워크의 규칙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 가치 전송이기에, 참여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가치 전송을 개선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른 분산화 아키텍쳐에 비해 자원(에너지, 컴퓨팅, 스토리지) 소모가 크다.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위해서 아직 진행중인 연구가 많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P2P
P2P는 사용자 연결 서비스를 네트워크로부터 떨어뜨려놓는다. 정확히는 거래 당사자 외의 그 어떤 중개자, 참관자도 배제하도록 설계한다. 그렇기에 P2P는 여전히 사람들을 빠르게 연결하지만, 누구도 그 사이에서 정보나 이용료를 취할 수 없다. 노스터(nostr, P2P 사이를 이어주는 릴레이가 있다는 점에서 노스터가 P2P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릴레이는 전송되는 데이터를 열람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P2P이다.)가 그 예시이다. 노스터는 비트코인 지갑과 유사하게, 한 쌍의 비대칭 암호 키를 기반으로 보안 P2P 연결을 지원한다. 노스터로 택시 호출을 구현한다면 중개 서버를 둘 수 없고, 자연히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뗄 수도 없다. 거래 당사자 사이에 개입의 여지가 없기에, 특정 주체가 네트워크를 지배할 수도 없다.
P2P는 사용자 연결과 접속 인터페이스가 분리되어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중개 서버 없이 공급자와 소비자가 연결된다고 하더라도, 안 좋은 상황이 되어 앱(접속 인터페이스) 제공자가 중앙화된 광고 상품을 운영하거나 특정 결제수단을 강제한다면, 사용자는 동일한 P2P 프로토콜에 접속할 수 있는 다른 앱으로 이주할 수 있다.
다만 아직 P2P는 제한적으로만 상용화되어있다. 파일 공유(토렌트), 소셜(노스터) 등 소수의 사례만 존재하며, 이러한 앱들 또한 아직 검색, 추천 등의 플랫폼 기능을 충분히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P2P가 성공하기 위해 충분한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오늘 알아본 기술들은 모두 플랫폼의 주권을 기업에게서 참여자로 돌려놓는다. 이미 민주주의가 표준이 된 이 세상이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군주들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세뇌했던 봉건제도에서 벗어난 것 처럼, 다시 한번 인터넷에도 따듯한 바람이 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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