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Garden by Rycont | 뉴스레터 구독하기

2024년 30주차 (7월 4주차)

싸지방에서 주간정리 쓴다. 밀렸다. 그래서 8월 1주차와 같이 쓰고 있다.


초소액사기 당했다. 9달 째 Spotify 프리미엄 가족 공유 파티에 참여중인데, 주인장이 프리미엄을 해지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인장에게 연락을 해도 답이 없다. Buts라는 [플랫폼]에서 파티에 참여했는데, 파티장의 잘못으로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 플랫폼 직권으로 환불을 해준다고 했다.

환불을 신청하니 며칠 지나지 않아 환불되었다. 결제한 1년치 금액을 일할 계산하여 남은 금액을 포인트로 적립해주었다. 현금으로 환불해주지 않은건 조금 아쉽다. 어차피 다음에도 오피스나 스포티파이를 공유 구독할 것 같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더 아쉬운 부분은, 스포티파이는 가족 등록이 해제된 시점부터 1년간은 다른 가족 그룹에 등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25년 7월까지는 개인 요금제로 스포티파이를 쓰거나, Freemium으로 버텨야 한다. 유튜브 뮤직으로 갈아타야 하나 싶다.

Garden Renderer 재작성

지금까지는 Digital Garden을 웹사이트로 빌드할 때 Astro(NodeJS)를 사용했는데, 이런 작은 사이트를 빌드하기엔 분에 넘치는 프레임워크라고 생각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고 있고, 나정도면 닭 잡는 칼은 직접 만들 수 있다. 그래서 Golang으로 닭 잡는 칼을 직접 만들었다. 전에 Aehrplo, Coupy와 이런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가상의 언어 "E언어"가 기계어만큼 빠르게 실행되고 Python만큼 충분한 유틸리티를 제공한다고 가정하자. E언어만을 이용해서 PS 문제를 푸는 사람은 허수라고 할 수 있을까?

PS에 관한 논의를 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E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위 논제를 인용한다. 내 생각에 GoE언어이다. 큰 논리적 어려움 없이 정적 사이트 생성기를 만들었고, 심지어 성능은 NodeJS보다 몇배는 좋다. 특히 PageRank를 계산할 때 자바스크립트에서는 상상도 못할 속도가 나오는걸 보며 감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 기능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메모리 할당부터 복잡한 자료구조까지 우아하게 처리할 수 있다. 특히 Map 기능을 잘 사용했다.

다만.. 충분히 추상화가 많이 된 언어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덜 추상화된 언어에서마저 추상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느라 제 성능을 다 못 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Golang을 사용하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Golang에서마저 Immutability를 추구하다가는 메모리를 과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라이브러리 생태계가 풍부해서 더 만족스러웠다. 마크다운 파서 / 렌더러를 직접 작성하려 했는데, 어엿하고 널리 쓰이는 라이브러리(yuin/goldmark)가 있어서 갖다 썼다.

그래서 지금은 네이티브 빌더로 렌더링된다. Good!

Arrival

스포일러 포함

영화 Arrival 포스터

영화 Arrival을 보았다. 취향 참 일관적이다. 항해중에는 고래랑 대화하는 책을 읽고, 지난주에는 여러 정신충격으로 멀티버스를 여행하며 운명과 자아를 깨닫는 영화를 보더니, 이번주에는 외계인의 언어와 사고를 이해하면서 시간을 초월하는 방법을 깨닫는 영화를 본다.

이번 영화는 참.. 만족스러웠다. 픽션을 감상할 때 적절한 관점은 전혀 아니지만, 나는 주된 소재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면 몰입이 잘 안된다. 그 예로 일전에 말했던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있다.

서로 다른 은하계의 단일 개체간 소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혀 말이 되지 않아서 실망했었다. (...) 전혀 다른 세상에서 형성된 두 언어가 어찌 단어 치환만으로 뜻을 옮길 수 있겠는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를텐데.

주간정리를 밀려서 쓰다보니 영화 내용이 어땠는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문학에서 봤던 이종간 언어 해석 방법론중 가장 논리적이였다. 병렬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말과 행동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패턴을 찾고, 이를 위해 몇주간 수백명의 언어, 음향 전문가가 연구한다는 내용.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는 결국 몇 안되는 단어집이였기에, 결국 끝까지 온전한 소통을 달성하진 못한다. 그래 단시간간 이종간 의사소통은 이렇게 끝나야지.

언어와 소통을 소재로 삼아서 결국 다루는 내용은 운명론이다. 미래를 볼 수 있다는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일까, 자유의지가 없는 세계의 운명도 내게 무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다. 내 운명을 알게 되어도 나는 열심히 살겠다. 지금처럼 매주 내 생각을 글로 적고,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주고, 친절하게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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